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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여름, 마지막 발악記錄/함께 2021. 10. 11. 04:25
지난 영어 회화 수업에서 팀원들이랑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
생각보다 세상에는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나도 항상 갈망했던 일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도전하지 못했던 것
나 홀로 여행을 떠나봤다
경주로 4박 5일 !
계획했던 여행 일정과 스웨덴 영화제 엠버서더 일정이 겹치면서 여행 스케줄을 바꿨고
집에서 바리바리 짐을 싸 오리엔테이션에 먼저 들렀다가 경주행 기차를 타는 것을 택했다
짐이 정말 무거웠다
카메라 두 대랑 아이패드가 한 몫했고, 우산도 챙겨야 했거든
보조가방으로 캔버스 백도 하나 챙기느라 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대역 캐비닛에 백팩을 넣어두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진행한 행사라 오리엔테이션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허밍 발표회 이후로 처음 방문한 모모
추억이 새록새록 너무 반가웠다
다들 잘 지내길 바라요
이대역에서 서울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서
끼니를 때우고
신경주역행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사진을 한 장 찍으며 여행 시작
생각보다 경주는 무지하게 시골이었고
교통도 노후하고 보도도 시설이 잘 안 갖춰져 있어서 뚜벅이로 다니기 참 힘든 구조였다
그리고 벌레도 참 많았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택시 타면 편하고 좋지 뭐
그리고 여행 끝에는 벌레랑 좀 친해져서 돌아왔다
(이제 모기도 잡을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했다고)
숙소에 짐을 풀고 버스를 타러 나오는 길
(역에서 숙소 가는 길 + 이때 = 경주에서 버스 딱 두 번 탐)
안양에서 서울, 서울에서 경주
하루 동안 별거 한 건 없어도 시간이 빨리 흘러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더라
부끄럽지만
와인 5잔에 플레이트 2개 해서 7만 원 넘게 나왔다
따흑
이 날 와인이 너무 먹고 싶어서 저녁 식사 겸 혼자 바에 갔다
편지 아닌 일기
정체 모를 뭔가를 쓰면서
사장님이랑 수다도 떨다가
비치되어있는 책도 읽다가
뭐 그러다 보니...
예... 그렇게 되더라구요...
결제할 때 사장님 왈...
그냥 바틀을 시키지 그러셨어요...
그러니까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덕구랑 통화를 했다
통화하다가 마주친 숙소 앞 길냥이들
경주에 있는 동안 덕구랑 통화를 참 많이 했다
이 날 내가 좀 주정 부린 것 같은데...
미안하다 야
그치만 나도 너 얘기 많이 들어줬으니까...
쌤쌤 0,<
덕구 시험 마무리 잘 하고 재미나게 놀자
숙소에 들어가서 목욕을 했다
술을 마시면 꼭 따땃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지거든여
숙소에 작은 배스가 있어서 몸을 담그고 퐁당퐁당
여유를 즐겼다
취했다는 증거
나르시시즘 넘치는 사진을 남겼다는 것
다음 날 아침
호스트님께서 챙겨주신 조식 알람에 일어나서
비척비척 걸어 나와 홀에서 앰버서더 과제를 하며 조식을 먹었다
아무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라
오늘은 뭘 할까 고민 고민하다
해보고 싶었는 패러글라이딩을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바로 업체를 서칭해 예약까지 마쳐버렸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택시 아저씨는
젊은 여자가 혼자 경주 여행을 왔냐면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냐면서
대단하다고 했다
그닥.. 대단한 건 모르겠고.. 칭찬 인지도 모르겠는데..
암튼 유쾌한 분이셨다
내리자마자 꺼내 주신 옷을 입고
커다란 트럭에 옹기종기 모여(낑겨) 앉아
굽이굽이 산 꼭대기까지 차를 타고 올랐다
나를 제외한 다른 손님들은 다 트럭 뒷칸에 실렸고
난...
트럭 미들에서 사장님들 틈에 끼어 앉아 강제 대화 참관행
사장님: 혼자 여행 오신 거예요?
나: 네
사장님: 오...
정상에 올라 순서를 대기하는데
커플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슬쩍 두리번거리길래
쪼르르 달려가서
찍어드릴까요??
그리고 나도 사진 얻었다 우헤헤
패러글라이딩 날아가는 방향 전경
차례가 돼서 막상 뛰려니 좀 무서웠다
꾸엑!
하면서 뛰었는데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 정말 평온해서
마치 요람 안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폭 안겨서 둥둥 떠다니는 그 느낌이
정말 평화롭고 외롭고 따듯하고 위로되고
땅에 내려온 뒤 그 감각이 이상하고 기분이 미묘해서
착지하고서도 한참을 앉아있다 택시를 불렀다
아니 근데 콘탁스 셔터막 고장 났나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동안 사장님께 근방 밥집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경주에선 밥 먹으려면 경리단길 가셔야 돼요 하하
그래서 4박 5일 내내 경리단길에서만 밥 먹음
암튼 밀면 맛있었다
경리단길 가는 길,
택시 아저씨 말씀이 관광 스폿은 야경이 예쁘다기에
스타벅스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근데 누구신지 몰라도 스타벅스 맞은편에서 자고 계신 분이..
경주에는 참 릉이 많다
누가 누군지도 모를 만큼..
이 분들도 누가 제 치러주려나
계획 없이 빈 손으로 나왔다가 갑자기 뭔가 끄적이고 싶어서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노트랑 펜을 하나씩 사 왔다
창가 바 테이블에 앉았는데
옆에 정말 귀여운 여자 아이와 엄마가 앉아서 도란도란 있는 것을 보니 너무 흐뭇했다
그리고 그 아이와 인사도 나눴다
전날 저녁에 바에서 과소비한 것을 참회하기 위해...
저녁으로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떠났다
경주는 관광지 대부분이 이렇게 조명 처리를 해둬서 저녁 관광을 하기에도 좋았다
관광 구역이 전부 평지라 무작정 산보를 걷기에도 좋고
안압지 앞에서는 조명으로 만든 풍선 같은 것을 팔았는데
대부분은 아이들이 들고 있지 않고, 부모들이 들고 있었다
혼자 그게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실례가 될까 봐 조심스럽게 차아알칵
일부러 아무도 안 걷는 길을 찾아다니다 보면
깜깜해서 앞에 뭐가 있나 싶은 때도 있다
주말 밤이라 그런지 안압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정처 없이 그냥 떠돌다 보니 연꽃이 가득한 연못
꽃은 없었고 꽃대만 남아있었다
내 생각에 연꽃은 꽃봉오리, 꽃잎보다
그 잎과 꽃대가 주는 분위기가 연꽃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아
못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오리가 슬금슬금 나왔다
이 친구랑 거의 30분 동안 놀았다 (진짜로)
눈싸움 5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눈치 게임 20분,
그리고 포토 타임 5분 정도
근데 포토 타임 때 내가 좀 화나게 한 것 같다..
플래시는.. 미안하게 됐어..
셋째 날 조식
하니까 떠오른 건데,
둘째 날 밤에 진짜 큰 벌레가 거실에 있어서 진짜 미치고 팔짝 뛰어
오밤중에 1층에 계신 호스트님께 연락드려 에프킬라 얻어다가
범벅을 해놓고 방으로 도망쳤다
그 벌레의 생사는 저도 모릅니다
나도.. 벌레 같은 작은 생명도 소중하다고 생각은 해..
근데 본능적으로 내가 위협을 느낄 땐 어쩔 수 없다..?
미안하게 됐어 그날 만난 빅 버그..
조식 먹고 짐을 챙겨서 두 번째 숙소로 이동했다
여행 기간이 꽤 길다 보니 숙소를 한 군데로만 잡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2박씩 두 군데를 잡았는데
참 잘 한 선택인 것 같아
두 번째 숙소 바로 옆에는 '황남정미소'라는 갤러리가 있었다
입장
경주에 있는 동안에는 정말 직감대로 움직이고 생활했기 때문에
지나가다 궁금한 것, 재밌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작은 갈등이나 계산 없이 무조건 돌진의 연속이었다
전시 이름은 '떼창'이었고,
재밌는 아이디어의 작업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에 대한 설명문을 찬찬히 읽다 보니
왠지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갤러리에서 나와보니
바로 그 맞은편, 인테리어 공사 중인 건물 앞마당에 웰시코기가 있었다
내가 또 웰시코기하면 껌뻑 죽으니까
주인 아저씨께 허락을 받고 열심히 같이 놀았다
이름은 '식빵'이랬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는데
우산을 편채로 옆에 내려놓고 소지품을 그 안에 둔 다음
진짜 열심히 공놀이를 해줬다
식빵이가 너무 좋아해서 나도 행복했어
식빵이 침, 털 그리고 빗물이 범벅이 돼서
손이며 바지며 전부 더러워질 때까지 열심히 놀았다
식빵이가 너를 놀아준 거 아냐?
해도 할 말 없음
사장님: 개를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나: 네! 저 식빵이랑 같이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해서 받은 사진
가려고 우산을 집어 들고 짐을 챙기니
가지 말라고 계속 공놀이 하자고 식빵이가 어찌나 재촉하는지
그래서 사진이 흔들렸나
암튼 막상 떠나려니 그새 마음이 무거워져서 미안했다
그래서 가려다 말고 또 놀아주고
두어 번 반복하다 정말 떠나기 전 찍은 동영상
그 뒤로도 식빵이가 있을까 궁금해서
안양에 올라오기 전까지 매일 들여다봤는데
이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경주에는 곤충이 진짜 많다
도시에도 많기는 하겠지만, 경주는 진짜 곳곳에서 눈에 띄게 보인다
어릴 때 내가 자주 했던 말 중 하나
내가 무서워하는 세 가지는 계단, 인간 이외의 생명체 그리고 마지막은 기억 안 나
진짜 기억해내고 싶은데 기억이 안 난다 5분 동안 고민해봤는데 도저히 모르겠어
나중에 떠오르면 적어줘 현아야 - '산' 이었던 것 같기도
아무튼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무서워한다고 할 만큼 다른 종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는 거
초-중학교 때는 개, 고양이도 무서워했다
포유류한테도 거부감을 느끼는데 곤충이라니 이건 어나더 레벨이잖아
나한텐 마치 외계인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래서 스물셋? 넷? 까지 모기는 커녕 초파리도 못잡았다
찐따 같아도 어쩔 수 없어..
이것 때문에 살면서 가족들한테 욕먹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더라
근데 나 이제 무당벌레랑 거미랑 교감도 할 수 있어
이제 모기도 잡아 대박이지 않냐고 어?
포유류에 대한 거부감은 고등학생 때부턴가 점점 사라지더니
그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미취학 아동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완화되었다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요즘 들어
셋 째날은 솔직히 정말 심심했다
친구들한테 엄청 질척이면서 이러다 고독사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더라지
넷 째날 안양으로 올라갈까 하는 고민도 진지하게 할 만큼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경주는 유명한 지역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
끼니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덕구가 해산물을 먹으라기에 초밥을 먹었다
나: 저녁으로 뭐 먹을지 좀 골라줘
덕구: 연어덮밥? 회? 암튼 해산물
나: 왜?
덕구: 경주 옆에 바다 있잖아 아 연어는 어차피 거기서 잡은 게 아니겠구나
이렇게 적고 보니까 대화가 좀 웃기네
암튼 중요한 건 저기 진짜 맛있음
경주 가는 사람 있다면
혹시 이걸 본다면
별표 백만 개
그래서 상호명이 뭐냐고요?
제 인스타 스토리 기록에 있을 거니까 저한테 물어보세요
저도 지금은 기억이 안 나요
나는 분명 초밥을 먹으면서 생맥주 300미리를 마셨을 뿐인데
얼굴이 왜 이리 붉단 말인가
asian flush 싫다
이 날 새로 들어간 숙소에서 혼자 여행 오신 분을 만나 저녁에 함께 맥주도 한 잔 했다
옆 방을 쓰시던 분이었는데 심심함에 몸부림치던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여행도 같이 다니게 됐다
새로운 숙소의 조식
이 숙소 진짜 가성비 최고
위치 좋아 시설 준수해 조식 좋아 사장님 친절하셔
흠잡을 게 없다
그래서 숙소 이름이 뭐냐면
미래의 나한테 물어봐
에어비앤비에서 찾아야 돼 지금 귀찮아
조식을 먹고 영완님과 불국사에 갔다
택시를 타고 꽤 가야 하는 거리라 갈 생각을 안 했던 곳인데
동행인이 생겨 도전
근데 나 뭐지
불국사 사진은 하나도 안 찍었네
이 사진은 왜 찍었을까
불국사에 가서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중 한 장인데
도대체 왜 찍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이래서 나는 기록을 해야 돼
어느 한쪽에는 돌탑을 쌓아둔 공간이 있었는데
정말 생각지 못한 곳에도 돌탑이 있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꽤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귀엽다고 생각했다니 저 땐 정말 마음이 평화로웠나 봐..)
돌탑은 귀엽다
아무튼 나도 돌 하나 얹으며 소원도 빌었다
이 글을 보면서 뭔가 대단히 까불거리는 망상을 펼쳤던 것 같기도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음미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권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던 것 하나는 정확히 기억이 난다
동상이 하고 있던 손의 모양을 지권인이라고 칭하는 모양이었다
불국사에서 석굴암에 가려면 꾸불꿀불 멀미 나는 도로를 달려야 했다
걸어가면 아마 3시간 정도 걸렸을 법한 어마 무시한 길이었다
산행로로 가면 2킬로 조금 넘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산으로 가로질러가면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튼 석굴암까지 모두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볕의 그림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면
그에 맞춰 빛도 흔들리는 모양이
꽤 로맨틱하고 평화롭다
이 두 개가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인지 잘 모르겠지만
넷 째날, 다섯 째날 영완님과 함께 다니는 동안에는 찍은 사진이 많지 않아
기록이 부족한 것이 꽤 아쉽지만
그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고 새로운 추억이었으니까
이 나름도 만족스럽다
혼자 간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함께 여행하는 일을
처음 해본 나에게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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