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성 전이 모델, 공연 <쉬어매드니스>
문화 콘텐츠 개발 실습: 게임성 전이 모델, 공연 <쉬어매드니스>
전 세계 22개 도시의 공연장에서 매일 공연 되고 있는 공연 < 쉬어매드니스 (Shear Madness) >는 독일 극작가 파울포트너(Paul Pörtner)가 쓴 <Scherenschnitt oder Der Mörder sind Sie>를 원작으로 하는 추리/코미디 연극이다. 국내에서는 2105년 11월을 기준으로 혜화 대학로에서 오픈런 중이며, 러닝타임 110분으로 대학로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다. 연극은 작은 미용실을 배경으, 2층(미용실의 위층)에 살고 있는 유명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가 살해당하며 시작된다. 잠복하고 있던 형사는 미용실에 있던 사람들을 유력 용의자로 간주하며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형사는 직접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의 증언을 토대로 등장인물들 중 범인을 색출해내려 한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관객의 투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며, 용의자 수대로 4가지의 멀티 엔딩이 펼쳐진다.
‘쉬어매드니스’는 일반적으로 통용되어왔던 ‘연극’이 의미하는 형식과는 다른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연극의 사전적 정의를 일부 거스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연극은 ‘배우가 각본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동작으로 관객에게 보여 주는 무대 예술’로 작동하고 있기 보다 관객이 참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많은 콘텐츠에서 활용되고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사용자와 콘텐츠가 분리되어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콘텐츠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기존의 미디어에 상호작용적 요소를 추가한 것으로,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연극처럼 보여주기식 콘텐츠에서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 보여주기가 아닌 참여하기를 통해 사용자가 더 깊은 몰입감과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연 예술계에서는 ‘쉬어매드니스’ 이외에도 다양한 연극에 시도되고 있으며, ‘이머시브 연극’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머시브 연극은 무대와 객석이 사라진 형태로,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공연장을 자유롭게 돌아보면서 둘러보거나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의 작품을 뜻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쉬어매드니스’가 무대와 객석을 통일한 것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로 상호작용 및 교류를 의도한다는 점에서 이머시브 연극으로 분류된다. 전통적 드라마 연극을 벗어나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서사의 진행에 기여하고 결말까지 추출해내는 극의 시스템은 관객이 색다름을 느끼게 한다. 그 증거로 ‘쉬어매드니스’는 기네스북에 1980년 초연 이후 미국 역사상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으며, 한국에서도 오픈런으로 4년 넘게 공연 중에 있다. 대작이라고 불릴만큼 뛰어나게 인정받는 작품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나, 이머시브 연극으로서 관객들에게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쉬어매드니스’는 추리 장르에 인터랙티브 형식을 결합한 타입으로, 관객 참여형으로의 전환이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추리와 상호작용의 결합으로 ‘추리해서 퍼즐 맞추기’라는 게임의 매커니즘을 차용, 게임성 전이 모델 유형 중 ‘추리퍼즐형’ 콘텐츠로서 탄생할 수 있었다. 이 ‘게임성 전이 모델’은 게임의 매커니즘과 다이내믹을 다른 미디어 콘텐츠에 적용시킴으로써 재미와 몰입을 강화시키는 콘텐츠 창작 전략이다. ‘쉬어매드니스’의 경우, 콘텐츠의 내용적 측면에서 ‘추리’ 과정과 형식적 측면에서 ‘관객 참여형’ 요소가 결합되어 게임성을 지니게 된다.
공연은 총 2부에 걸쳐 진행되는데, 1부와 2부 모두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주요 인물로는 게이 남성 미용사, 가벼워보이는 여성 미용사, 무뚝뚝한 남성 골동품 상인, 무식하고 이기적인 상류층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이 네 명의 캐릭터는 극의 초반에 평범한 미용실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각각의 캐릭터가 태연하게 미용실이라는 공간에서의 일상을 공유하는 듯보이지만, 관객은 인물들의 수상해보이는 행동들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다. 찰나의 표정 변화, 계단을 급하게 뛰어 올라가는 것, 가위를 숨기는 것 따위의 작은 단위의 행동들이 숨어있어 관객에게 집중력을 요구하며, 이를 발견한 관객에게는 의구심을 들게 하여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어서 위층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가 사망하고나면, 잠복해있던 형사들이 등장해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미용사 둘과 손님 둘을 대상으로 사건의 범인을 유추하기 시작한다. 형사는 용의자들을 취조하고, 용의자들에게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재현하도록 시킨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자신이 기억과 용의자들의 재현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도록 참여해야하는데, 동선을 속이거나 했던 동작을 빠뜨리는 등의 거짓 재현을 하면 관객은 가차없이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어야 한다. 관객들은 각자 거짓 재현을 지적하며 취조에 참여한다. 취조 과정에서 관객은 형사의 조력자로서의 페르소나를 얻게 된다. 거짓된 재현을 구사하는 인물은 어딘가 당당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기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지적을 많이 받은 인물을 의심하게 된다.
과거재현이 끝나면 형사는 10분 간의 인터미션을 고지한다. 이때 인터미션은 비단 연극 중간의 휴식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10분간 용의자들은 무대에서 내려올 수 없으며, 자유로운 시간동안 관객은 부여받은 페르소나를 통해 용의자들을 뜯어보게 된다. 형사는 없고 용의자만 무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관객들을 마주보고 있는 모습은 관객의 페르소나를 부여받았음을 입증해준다. 그리고 관객은 추리 과정에서 생긴 논리적 궁금증이나 1부에서 밝혀지지 않은 특이점들을 형사에게 제보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형사는 극장 입구쪽 로비에 위치한 책상에 앉아 찾아오는 관객들의 제보를 받는대로 수첩에 옮겨 적는다. 2부가 시작되면 형사는 관객들의 제보를 하나 하나 읊으며 진위를 확인하기 시작하는데, 용의자들은 다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거나 거짓을 고백한다. 이때 관객들의 제보는 공연 계획에 없는 것이므로 배우들은 최대한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하기 위해 즉흥에서 그럴 듯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 대답의 진실성 여부에 따라 관객은 용의자에 대해 의심의 정도를 다르게 한다.
공동 수사 시간이 끝나면 이 날 공연의 진범을 가려내는 시간이 온다. 관객들은 형사의 지휘에 따라 네 명의 용의자 중 어떤 용의자가 진범으로 의심되는지를 골라야 하는데, 거수를 통해 가장 많이 득표한 인물은 해당 공연 회차의 진범으로 발탁된다. 따라서 관객의 반응에 따라 그 날 공연의 결말이 달라지며, 그 결말은 과반수의 관객이 동의한 내용이므로 대다수의 관객은 자신이 이 사건을 직접 해결해냈다는 성취를 보상으로 얻게 된다.
이렇게 관객에게 페르소나를 주고 추리 드라마를 이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관객이 마치 롤 플레잉 게임을 하고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롤 플레잉 게임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동안 게임의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자신과 해당 캐릭터를 밀접하게 여기는 것처럼, 관객은 살인 사건이라는 막중한 사건 속 용의자들의 행적을 지켜본 목격자로서 형사의 조력자가 되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임무를 플레이 하게 된다. 자신의 목격담 및 증언을 토대로 수사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는 관객은 연극의 진행 순서에 따라 심도 깊은 게임성을 즐기게 된다. 연극의 시작부분에서는 관객들이 스스로를 해당 연극의 관객이자 목격자로 여긴다. 그러다 수사 시간이 오면 형사의 조력자라는 페르소나를 얻게 되고, 마지막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인물이 진범이었다는는 것이 밝혀지며 실질적 형사의 역할을 수행해냄으로써 플레이어로서의 최종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플레이를 마친 후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자신이 기여했다는 성취감을 보상으로 받게 되어 만족감을 준다.
또한 게임 같은 공연, 이머시브 연극은 공연의 아킬레스건을 보완해줄 기대주이기도 하다. 공연은 티켓 값이 비싸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어 영화나 게임같은 콘텐츠에 비해 문화계에서는 비교적 비주류에 속한다. 하지만 ‘쉬어매드니스’와 같은 이머시브 연극의 경우, 관객이 직접 공연에 참여함으써 더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때문에 기존의 것에 비해 더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공연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멀티 엔딩 구조는 원하는 엔딩을 보지 못한 관객들이 여러 번 관람을 가거나, 커뮤니티를 통해 엔딩을 공유하거나, 같은 엔딩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단체 관람을 가게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 멀티 엔딩 시스템은 게임과 매우 닮아있는데, 멀티 엔딩의 스토리형 게임의 경우에도 많은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엔딩에 궁금증을 갖는다. 때문에 해당 플레이어들은 이미 플레이를 완성했더라도, 이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거나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엔딩을 공유하며 그 욕구를 해소하고자 한다. 모든 엔딩을 수집하고 경험하고 싶어하는 게임의 사용자 특성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쉬어매드니스’가 갖고있는 매력적인 게임성을 증명해준다.
한가지 연극 ‘쉬어매드니스’에 한계가 있다면, 진범을 찾는 거수 과정에서 관객은 자신이 과반수에 해당하지 못했을 때의 상황이 그러하다. 관객은 자신이 선택한 인물이 과반수의 득표를 하지 못하면 갑작스레 연극으로부터 타자화된다. 다른 사람이 고른 엔딩을 함께 맞이하며 그동안 쌓아온 개인의 추리 과정을 포함해 부여받았던 페르소나까지 부정당하고 보상도 얻을 수 없게 된다. 모든 관객은 함께 연극에 참여하며 같은 장면을 보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서로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은 현장감을 필요로하는 공연 방식의 특성상 인터랙티브가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다수의 관객을 대상으로하는 멀티 엔딩 라이브 콘텐츠가 공통적으로 갖는 한계점일 것이다. 추후에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나 방식의 전환을 시도해 더욱 매력적인 공연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