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교양
논리와 사고 프로토콜: <오만과 편견>, 교양
영화에서는 교양의 요소로 독서, 예술활동, 세련된 자태와 매너 등이 언급된다. 그리고 캐서린 공작부인과 캐롤라인은 극 속에서 교양인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앞서 제시된 것들에 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교양인이라 분류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캐서린은 한밤중에 베넷가(家)에 찾아가 엘리자벳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엘리자벳과 자신의 딸과 정혼한 다아시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추궁·책망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현대에서 통상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며, 당대에도 통용될만한 사건이 아니었음을 다아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다아시는 이런 캐서린의 행동을 부끄러이 여기고 엘리자벳에게 사과한다. 이것은 다아시가 캐서린의 행언이 비교양적이라고 판단했다는 증거이다.
캐서린은 엘리자벳에게 다양한 교양의 요소를 제시하지만, 엘리자벳은 그 중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다. 캐서린은 예술활동의 능숙도, 가정교사의 여부, 베넷가 자녀들의 사교계 활동 여부를 베넷가의 판단 지표로 삼아 그녀를 평가한다. 베넷가가 자칭,타칭 교양인이 말하는 교양인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몰락한 귀족 가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래 그런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예측하건대, 만약 그들이 자랑할만한 부를 가졌더라면 대외적으로 지금과 같이 허물없고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명무실한 귀족이라는 이름 아래 생활고에 부쳐 생활하는 그들에게는 애초에 선택지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악조건은 샬롯을 비롯한 일반 서민들에게도 적용된다. 외적인 교양은 환경적 요소에 따라 후천적 영향을 받는 것이 크다. 부유계층의 사람들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학습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으나, 생계 유지를 위해 힘쓰는 것이 전부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교양이라는 것은 이른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富)→교양의 학습→진정한 교양인으로의 등극’이라는 알고리즘이 성립하는가 묻는다면, 그것 또한 부정당할 것이다. 우리는 캐서린을 통해 학습으로 얻을 수 있는 외적인 교양만으로는 ‘교양인’이라 분류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교양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독서, 피아노, 그림과 같은 활동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완성도 있는 외적 교양을 갖추기 위하는 것보다는, 우선적으로 내면적 교양을 쌓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추구라고 생각한다. 부(富)라는 태생적 장애물을 필요로하는 외적 교양을 교양인으로서의 절대적인 가치로 두는 것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타인과 소통·교감할 수 있는 여유,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내면의 덕목들이 더 합리적인 교양의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콜린스의 배려 없는 일방적 고백에 거부감을, 캐서린의 지나친 무례함에 불쾌감을, 저밖에 모르는 리디아에게 얄궂음을, 제인과 빙리의 소극적 태도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